SNS 전문가 남시언 노드(node: 데이터를 전송하는 통로)를 통해 정보와 생활,
감정을 전달하고 어제와 오늘의 일들이 팝업창이 열리고 닫히듯 소통하는 세상이 되었다. 사이좋은 세상을 만들자던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한동안 대유행의 물결을 신들린 듯 탔으나 지금은 SNS(Social Network Service: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새로운
파도에 밀려 인터넷 바다 어디에선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모양새다.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핀터레스트
등의 1인 미디어가 대세인 요즈음, 자신의 생활이나 삶의 방식은 물론 생각까지도 어필할 수 있는 공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라는
유형의 공간이 아닌 또 다른 무형의 공간, 미디어 하우스가 되었다.
직접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하지 않아도 근황을 나누고
내가 어제 무엇을 먹고 어떤 물건을 가장 애용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SNS의 가장 일반적인 인맥소통이다. 지금의 기분을 드러내기도
하고 어떤 의견에 대해서 설전을 벌이기도 한다. 그것이 모두 준비되고 계획된 것이 아니라 즉석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난다는 것이
SNS 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닌가 싶다. 오늘 마감한 기획서를 내일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끝나는 즉시 상사의 이메일로
전송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우리의 삶도 그러한 노드를 따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제는 보편화되고
있는 SNS라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대도시도 아닌 지방인, 안동에서는 SNS 물결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행이나
정보에 취약해서라기보다는 아마도, ‘저거 꼭 해야 돼?’라는 인식이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이러한 편견을 깨고 안동에서 SNS
활성화를 일조하는데 크게 앞장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 청년이 있다. 바로 올해 스물여섯의 남시언 씨다.
그
를 안동에서 ‘SNS의 활성화를 이끈 사람’ 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2010년 트위터 가입자가 안동에서 단 두 명이던
시절, 그가 그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고, 블로그는 물론 그 밖의 SNS 가입과 활동을 통해 명실공히 SNS 전문가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1987년생인 그는 상당히 앳된 외모에 전형적인 프로그래머의 이미지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쓰리피스의
말끔한 정장 차림에 야무진 말솜씨로 봐서는 그가 보여주는 외모보다 더 강하고 포부가 큰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는 SNS
마케터이다. SNS와 관련된 마케팅 분야의 교육과 기획 등의 여러 업무도 함께하고 있지만 마케팅 업무가 그의 주력 업무라고 볼 수
있다. 또 그의 이름 뒤에는 작가, 강사, 파워 블로거라는 수식이 뒤따른다.
청춘의 독립선언, 버즈맨이 되다 안동과학대에서 컴퓨터정보를 전공한 그는 대학 졸업반,
독립을 선언하고 집을 나왔다. 프로그래머로서의 길을 준비하던 친구와 함께 조촐한 셋방을 얻고 살림살이도 없이 달랑 컴퓨터와 이불 한
장을 들고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6개월간은 거의 수입이 없어 아르바이트로 모아두었던 돈으로 근근이 생활을 했다. 2010년 한창
스마트폰의 보급이 상종가를 높이고 있을 때, 그가 뛰어든 일은 다름 아닌 어플리케이션(이하 어플) 개발이었다. 안드로이드 체제의
어플을 개발했는데 게임, 일정관리 등 4개의 어플을 개발했다. 스타트업 어플리케이션 개발 경진대회 최우수상을 수상할 정도의
실력이었고, 그럭저럭 수입도 있었지만 만족할만한 일은 아니었던 듯하다. 어플 개발 6,7개월 끝에 그가 집중하기 시작한 일은
대학시절부터 꾸준히 해오고 있었던 블로그와 SNS 였다. 그가 이 길로 뛰어든지 2,3년 만에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게된 것은
사실 그리 긴 시간이 걸렸다고 볼 수는 없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파워블로그로 공식인정되고 SNS 마케터로서 성공 가도에 오른
것은 아마도 꾸준한 노력은 물론 그만의 전략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블로그 운영에 대한 정보와
SNS를 활용한 시장업무와 기획, 그에 대한 마케팅에 대해 안동은 물론 안동 외 지역으로 슬슬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해를 돕고자 간단히 설명을 붙이자면 많이 알려진 블로그 마케팅이 불특정 다수를 위해 인터넷 상의 검색이 가능한 마케팅 방법이라면
SNS는 인맥으로 연결된 지인 마케팅으로 인터넷상의 검색은 불가능 하다. 때문에 SNS 에서는 버즈워드의 위력이 발휘된다고 볼 수
있다. 버즈워드는 미국의 IT업계에서 쓰이기 시작한 ‘입소문을 내는 단어’라는 뜻이다. SNS 마케팅은 전략적으로 입소문을
낸다는 데에 마케팅 효과가 크다.
남시언 씨는 효과적인 마케팅을 위해 장점은 물론 단점까지도 모두
오픈하는 전략적인 버즈워드로 마케팅하고자 하는 상품의 진실성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진실은 통한다고 하지 않는가. 뒤늦게 속는다는
느낌을 받는 것 보다 소비자들에게 솔직함으로 어필한 마케팅이 더 효과적이었다. 때문에 SNS 마켓에 오른 많은 상품이 SNS
마케팅 효과를 봤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SNS 불모지인 안동에서 SNS 마케팅을 2년 새에 활성화 시켰다는 것은 그의 전략이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랩하는 프로그래머, 희망을 노래하는 청춘 대학시절, 처음 블로그와 SNS를 시작할 때만
해도 주위로부터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고 한다. 대부분 지금과 같은 미래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SNS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할 수밖에 없는 플랫폼을 갖추고 있다’는 그만의 ‘촉’ 이 있었다니, 어쩌면 삶의 트렌드를 읽어내는
그의 센스가 지금의 그로 이끌어 온 것이 아닌가 싶다.
당시 만류했던 동기들은 물론 학과 교수님까지도
요즘은 ‘그거 어떻게 하는 거냐’며 되려 질문을 해오곤 한다. 이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이후로 온라인으로 ‘선배님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한다. 블로그와 SNS로 안동에서는 사람들이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직업군으로 자리 잡은 뒤, 외제차를 몰고 다닌다는 등 한 달 수입이 천만 원 대라는 등의 소문이 있어 그런 쪽지가 자주 오는 것
같다며 겸손함을 내비쳤다. 사실 위와 같은 소문은 모두 소문이란다. 아직 차도 없고 수입은 워낙 들쭉날쭉해서 없을 때는
마이너스이고 있을 때도 그 정도 수입은 턱도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조언을 구하는 후배들에게 그는
하고 싶었던 일을 소신 있게 꾸준히 해왔던 자신의 진정성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남시언처럼 된다’ 는 것은 무얼
공부하고 어떤 마케팅 전략적 체계가 있고 그런 방법론 적인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하는 꿈’을 가졌던 청춘의
꾸준한 결과물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남시언 씨는 ‘랩하는 프로그래머(http://underclub.tistory.com)’라
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많은 청춘들의 멘토로서 자리하고자 노력했다. 어려운 환경이나 무엇을 할지 모르는 방황하는 그들에게 자신이
걸어온 길을 공부삼아 청춘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마침, 파워블로그로 공식 인증된 그의 블로그 유명세 탓도 있겠지만
블로그에 연재된 많은 글들을 보고 출판사에서 책으로 출판하고자 연락이 왔다. 청춘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껏 쏟아낸
이야기들을 모아 <1인분 청춘>이라는 책으로 만들어져 서점에 안착하게 되었다. 자기계발서는 물론 상당량의 독서습관을
가지고 있는 그는 언젠가 자신이 연재한 글을 책으로 내고 싶었다고 하나, 실은 파워블로그로 연재가 한창이던 때, 출판사에서 연락이
올 것이라는 어느 정도의 확신도 들었다고 한다. 현재는 두 번째 저서를 준비 중인데 <1인분 청춘> 보다 더 전문적인
자기 계발서를 기획하고 있다.
일도 하고 책도 쓰고 SNS 전문가로서 여러 대외기관을 통해
외부강사로도 활동을 하는 스물여섯 청년 남시언 씨에게 나이답다, 라고 느낀 것이 바로‘랩’을 한다는 의외의 면에서였다. 공부만 할
것 같고 나아가 일만 할 것 같은 그에게 새로운 반전 매력도 있었다. 블로그 이름이 ‘랩하는 프로그래머’ 라니 심상치 않기에
물었더니 본래 랩을 좋아해서 대학 때는 짧게나마 동아리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의 블로그에 방문하면 자작곡 랩도 들을 수 있다.
방황하던 청춘의 성장기 외아들이었지만 남시언 씨는 그리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는
못했다. 때문에 부족한 것이 있으면 그 스스로가 자꾸 채워나가려고 하는 습관이 생겼으리라. 대학에 들어가서도, 독립하면서도
부모님께 경제적인 도움은 하나 받지 않고 스스로 해결했고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때문에 대학시절 이후의
그의 이미지는 ‘건실한 청년’이라고 이마에 쓰여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도 사실은 중학교 때까지
암울한 과거가 있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행패부리기, 학교에 부모님 불려가기, 경찰서 드나들기. 반듯해
보이기만 했던 남시언 씨의 고백은, ‘청춘 멘토’로 나서기엔 다소 젊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불식시켰다. 일찍 철이 든 애늙은이
청년의 진지한 자기반성과 철학은 나이로는 따질 수 없는 깊이가 느껴졌다.
어린 시절 장사로 바쁜 부모님 아래서
외동아들로 형제 없이 혼자 자란 그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환경도 있었고 반항기도 많았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방황하던 습관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지난 일들은 자신의 블로그에 많은
이야기들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자신처럼 꿈도 없이 방황을 일삼는 또 다른 자신과 같은 많은 청춘들에게
‘나처럼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취지가 가장 컸다. 물론 결국은 그러한 과정들이 남시언
이라는 청춘을 성장시켰을 것이다.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선도하고 도와주고자 했던 것은 고등학교 시절 교사에
대한 꿈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교사의 자리는 아니지만, 안동영상미디어센터나 공무원 대상의 공공기관을 통해 다양한
직업군은 물론 시민들을 대상으로 그는 SNS와 블로그에 대한 꾸준한 강의를 해오고 있었다. 교사로서의 자질을 발견했다는 그는 사실
교육에 대한 강의의 기회가 더 많기를 바랐다. 사람들을 가르치는 데에서 자신도 모르는 즐거움을 발견했다하니 어쩌면 교사의 꿈을
실현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나.
안동의 대표 청년으로 거듭난 본토박이 청년 그에게 최근 반가운 소식이 있다.
경북문화콘텐츠진흥원의 직원으로 입사한 기쁨을 누렸기 때문이다. 사실 부모님께는 아들이 하는 일을 백날 설명해봐야 발간된 책 한권
드리고 경북문화콘텐츠진흥원 직원이 됐다는 말 한마디가 더 빠른 이해와 기쁨을 드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쑥스럽지만 부모님께서
좋아하시니 다행이라고 한다. 자신이 일궈온 분야와 관련성이 있다고 하니 그 안에서 경북의 문화콘텐츠 발전을 위해 자신의 역량을 또
다르게 발휘해 나가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인터넷 상의 우스갯소리를 하자면, ‘마크주커버그가 한국에 태어났다면?’ 이라는 질문이 있는데, 그 답이 ‘백수, 뒤늦은
SNS 사업 아이템으로 따 당함’ 이다. 마크 주커버그가 창업한 나이는 스무 살이다. 우리나라에서 스무 살의 젊은 청년이 무언가를
새로 시작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들의 성공이 종종 방송 등의 매체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어쩌면
그들의 성공 나이라기보다, 그들의 성공을 거부하는 사회적 체제를 거슬렀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했다, 라는 맥락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회적 경험이 부족하거나 사회가 요구하는 학벌을 갖추지 못한 젊은 청년들을 배척하는 것은 듣기에 매우 거북스럽지만 어찌했든
현실이다. 특히 좁은 지역사회에서는 그러한 룰이 더 크게 적용된다.
그런 면에서 안동에서 태어나고 자라
안동에서 교육을 마친 청춘이 외부로 나가지 않고 안동의 인재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남시언 씨는 그런 부분에서
또한 청춘의 모델이지 않을까 싶다. 소신과 열정으로 자신의 삶을 꿋꿋하게 개척했다는 것에서 어쩌면 남시언 씨의 멘토는 바로 자신이
아니었을까.<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