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언의 맛있는 책 읽기(198) : 인간실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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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시언의 맛있는 책 읽기(198) : 인간실격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이라는 자격을 갖는 것인가? 아니면 살아가면서 그 자격을 얻어가는 것인가? 이 책의 제목 <인간실격>은 인간으로서의 자격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해보게 만드는 함축된 문장이다. 원제목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자'로서 인간의 자격조차 갖지 못한, 인간이 아닌 인간의 일기를 뜻한다.

<인간실격> 일본의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가 쓴 장편 소설로 그의 대표작이다. 인간실격 탈고 이후 작가 스스로가 자살을 하면서 유서같은 자전적 소설로 알려져있다. 소설의 형식을 띄고있지만 작가 스스로의 어린시절의 경험이 투영된 부분이 많기 때문에 현실감이 피부에 와 닿는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허무하고 냉소적이다. 아무런 희망도, 밝은 미래도, 꿈도 찾을 수 없다. 그는 스스로의 말처럼 '죽어야지, 죽어야한다, 죽어야만한다'. 아니 그래야만했다. 죽음이 목표인 인간.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함께 자살시도를 한 동료만 죽어버림으로써 더욱 자살을 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 총 세 개의 수기로 이루어진 이 책은 내면의 모습이 아닌, 연기하는 인간의 비참한 최후와 어디에도 기댈곳이 없어, 심지어 죽을수도 없어서 너무나도 슬프고 불안하기만한 인간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그리고있다.

소름끼치도록 우울했던 이 책의 주인공은 요조. 사회적 불안과 대인기피증을 가진 듯보이는 그는 어린시절 사회로부터 완벽하게 소외된다. 그가 가진 세밀함과 예술적인 감각 따윈 아무런 장점도 없다. 웃음이 없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인간들은 항상 서로 거짓말을 하고, 서로 속고 속이면서도, 나중에가서는 다른이가 자신을 속였다고 이야기한다. 요조의 눈에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도 있고 연기를하여 상대방을 속일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조금도 상처받지 않고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그래서 인간은 공포다. 그 이해할 수 없는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위해, 자신까지 속여버리기 위해 요조는 '광대짓'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 '광대짓'으로부터 모든 불행은 시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광대짓'조차 하지않았던들 모든 불행 역시 거기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책 밑줄긋기

어떻게든 좋으니 웃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인간들은 내가 그들의 소위 ‘삶’ 바깥에 있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무조건 인간들의 눈에 거슬려서는 안 된다. 나는 무(無)이며, 바람이며, 허공이라는 생각만이 자꾸만 더해져 저는 광대 짓으로 가족을 웃기고, 또 가족보다 더 불가사의하고 무서운 하인이며 하녀한테까지 필사적인 광대 서비스를 했습니다.

요조는 자라면서 점점 더 많은 사회경험을 하게되는데 술, 담배, 매춘, 전당포 등이 그것이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조금의 심적 안정을 얻게되고 '광대짓'이 아닌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다시 대면하는 계기를 맞이한다. 또한 매번 슬픈 눈을 했던 요조에게 주변 여자들은 이상하게도 끌려서, 결과적으로 주인공이 여자를 완벽하게 싫어하도록 만들어버린다. 인간의 자격이 없는 요조에게, 여자란 사치 수준이 아니라 아예 불필요한 존재다. 일시적으로나마 기분을 달래주는 술과 담배, 약에 점점 더 취해간다.

책 밑줄긋기

아침에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났을 때, 저는 본래의 경박하고 위장에 능한 광대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에도 상처를 입습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는 겁니다. 상처받기 전에 얼른 헤어지고 싶어 마음이 급해지는 통에 광대 짓이라는 연막을 사방에 둘러치는 것입니다.

돈벌이가 없기 때문에 술과 담배를 사기 위해 자신의 전재산을 턴다. 황홀한 기분만이 요조가 살아가는 단 하나의 이유다. 그런 생활을 영위하다가 내연의 처가 강간당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그 이후 요조는 다시 옥상을 올라가 혁혁한 웃음을 짓고는 다시 자살을 시도한다.

책 밑줄긋기

신께 묻습니다. 무저항은 죄가 되나요?
호리키의 그 신기할 정도로 아름답던 웃음에 저는 눈물을 쏟아 내며 판단이고 저항이고 할 생각도 못해 본 채 자동차에 실려 여기까지 왔고, 미치광이가 되었습니다. 당장 여기서 나간들 제 이마에는 역시 미치광이, 아니 폐인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겠지요.
인간, 실격.
이제 저는 완전하게, 인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결국엔 정신병원에 갇히게된다. 요조는 단 한번도 미친적이 없는 인간이다. 아니 오히려 원래부터 우울한, 슬픈, 힘들고 파괴적인 인간의 내면을 노골적으로 보여준 가장 솔직한 인간이다. 그럼에도 그는 정신병원에 갇힌다. 정신병원에서 그는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정신병원에 있는 모든 이가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미친 사람과 미치지 않은 사람을 나누는 기준은 단지 그가 정신병원에 있는가, 사회에 있는가로 판가름난다. 실제로 미쳤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인간, 실격.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인간. 인간에게 무저항은 죄가 되는가? 인간으로서 우리는 어떤 자격을 갖춰야하는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다.


인간 실격 - 10점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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