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내가 살아있는 나에게. 세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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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편지

자네는 왜 한동안 편지를 쓰지 않았느냐고 내게 물어볼 것 같구만. 내 자네니까 하는 얘기지만, 나도 매일 편지를 쓰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다네. 귀찮다거나 졸려서라기보다는 너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나면 펜 조차 들 힘이 없어서 그대로 곯아떨어진다네. 그런날이 있지. 하지만 이번에는 신체적인 노곤함의 이유가 아니라 잠깐 여행을 다녀왔다네.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이곳으로 온지가 꽤 되었기 때문에 이 곳에서도 여러명의 친구를 사귀었네. 그들 모두 사람이 착해. 그래서 좋아하지. 사람이 착하지 않다면 그 사람과 사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참 멀리 다녀왔지. 정말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왔네. 무려 4년만에 다녀온 것이네. 4년전 그 친구들과 함께. 4년전 갔었던 그곳으로 떠났네. 그때나 지금이나 별 계획없이 훌쩍 출발했지. 일종의 추억여행이라네. 예전과 마찬가지로 그들과 함께 떠들고 웃고 먹고 마시다가 안전하게 되돌아왔다네.



추억이 없다면 삶이 얼마나 투박해질지 상상이나 가는가? 지치고 힘들때마다 쌓아두었던 추억들을 되감으면 괜시리 웃음이 나온다네. 이런건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것이야.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자네도 알다시피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더군. 그런 의미에서, 보다 젊을 때, 추억을 쌓을 기회가 있다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추억에 투자하는게 좋을 것 같네. 이건 내 경험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추억외엔 남는것도 별로 없으니까 말이야. 인간이라면 누구나 나이에 관계없이 '오늘'이 항상 젊지 않은가? 따라서 기회가 왔을 때 무작정 떠나지 못하면 평생토록 떠나지 못할수도 있다네. 언제나 그렇지만 기회란 잡는 사람의 몫이지, 별도로 준비되어 있는것은 아니네.

친구여, 우리가 함께했던 추억외에, 자네는 어떤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가? 내 눈에는 현실을 핑계삼아 심심하고 미지근한 삶을 보내는 사람보다 차라리 밀랍인형이 더 행복해보이네. 즐거움을 얻기 위한 도전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 자기 자신을 믿고 스스로를 희생할 각오가 되어있을 때 얻을 수 있는게 행복과 즐거움 아니겠는가?

영원한 동료이자 동반자여, 자네와 내가 함께 추억을 쌓던 그 곳에서도 우리는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지.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을 순 없다는 말이 맞았네. 그들 중 일부는 우리와 함께 추억을 쌓았고, 일부는 추억은 커녕 아무것도 쌓지 않는 선택을 했었지. 기억나는가? 이런 행위 역시 일종의 추억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네만. 아무튼 그들의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 나는 여태껏 판단할 수가 없다네. 추억이 없어도 살아가는데 엄청난 지장이 있거나 그렇진 않겠지. 그냥 단순하고 심심해질 뿐이야. 그리곤 나중에 후회하지. 돈, 사람, 명예가 모조리 사라지고난 뒤에 남는 것은 오로지 추억이니까. 회상할 일이 많다는 것, 추억하면서 슬쩍 미소를 띌 수 있다는 건 어떻게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의 임무이자 스스로를 치료하는 정신적인 특효약이라네. 경험보다 큰 스승은 없다는 말 기억하는가? 추억, 여행, 아니 인생 자체는 애초에는 속이 텅 비어있는 대나무와 같다네. 그것을 어떤 경험으로 어떻게, 품질 높게 꽉 들어차도록 만들 것인가가 단순하게 말하자면 인생을 촘촘하게 살아가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말이야.

사실 이 편지를 그 여행지에서 쓰려고 종이와 펜을 휴대하여 갔다네. 하지만 너무나 즐겁고 나중에는 아쉬워질 시간들을 최대한 즐기고 싶은 마음에 종이와 펜은 잠시 잊고 그 속으로 빠져들어 황홀경을 처음 맛 본 처녀처럼 그 상황에만 집중하여 시간을 보냈다네. 아아!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무언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는 그 쾌락이란! 말로는 설명이 안된다네. 하물며 글솜씨가 자네보다 부족한 내가 그것을 어찌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표현력이 부족한들 자네의 특출난 이해력으로 잘 판단해주길 바라네.

Featured photo credit: Martin Cathrae via flickr 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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