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언의 맛있는 책 읽기](162) 동물농장 -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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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식적이지만 '고문관 이론' [1]이라는게 있다. 여러명이 모인 조직내에서 고문관은 꼭 한 명씩 존재하며, 고문관 그 자신을 제외한 다른 조직원들은 그를 뒷담화하고 괴롭히는 것에서 만큼은 엄청난 단결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만약 '그 고문관'이 사라져버리면 평화가 찾아올까? 그렇지 않다. 조직내에 있는 그 누구라도 또 다른 '고문관'이 되어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과 격리 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엄청나게 고문관을 욕하지만 그 고문관이 사라지길 바라진 않는다. 이런 현상은 소규모 조직일 때 특히 심해지는데(고문관이 될 수 있는 개체 수가 적으므로), 그를 죽일 것처럼 행동해도 죽이진 않는다. 그가 없어지면 더 이상 우리를 단결시켜주는 욕할 대상이 없고, 어떻게해서든 또 다른 '욕할 대상'을 만들어낼 것이란 사실을 모두가 암묵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인간사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동물의 사회행동>의 저자 디디에 디조르는 쥐들의 실험에서도 같은 현상을 발견했다. 착취형, 피착취형, 독립형, 천덕꾸러기형 등으로 보이지 않는 계급이 나뉘고 그 계급을 통해 위계질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착취형 쥐들만을 잔뜩모아 놓으면,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 중에서 또 다시 착취형과 피착취형 등으로 계급이 발생한다. 쥐들 뿐만 아니라 원숭이 같은 동물들을 상대로한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온바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특정한 사회조직이 만들어지는 곳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위계질서와 약자에 대한 학대현상이 나타난다. 최첨단을 달리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욕먹는 팀장이 있는 팀의 팀원들은 압도적인 단결력을 보여준다. 과거보다 학생 수가 판이하게 줄어든 학교 교실에서도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고 누군가는 가해자가 된다. 힘센 학생에게 빵을 사다주는 이른바 '빵셔틀'은 과거에도 지금에도, 앞으로도 계속 있을 수 밖에 없다. 사회적 심리가 그것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소규모화된 구성원에 의해 단지 한 명이 받는 피해가 더 커지는 것 뿐이다. 2명이 빵 2개를 사와야하는데, 이제는 1명이 2개를 사와야한다는 것이다.




전체주의를 비판하며 풍자한 소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소비에트 연방의 전체주의를 비판하고 풍자한 소설이다. 제목에서 주는 편안함과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모두 동물이라는 점에서 마치 구전동화같은 가벼운 이야기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실제론 매우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반전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농부는 굶주리고 관아의 곳간은 문을 걸어 잠그기도 힘들 정도의 곡식이 쌓여있다면 농부들은 봉기하고, 그 곳간을 털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관아를 없애버릴터다. 정상적이라면 평화가 찾아와야하는 상황. 그러나 그 이후에는 농부들 사이에서 또 다시 보이지 않는 '관아'가 생기고 '곳간'이 생기며, 또 다른 착취자가 생긴다. 결국엔 그 착취가 역시 내쫓길테고.... 그럼 다시 또 다른 착취자가 군림할 것이다. 이런 것이 반복된다.

<동물농장>의 배경이 되는 2차 세계대전의 전후가 되는 20세기 초반 유럽이 딱 그랬다. 군주제로 통치되던 러시아에서는 변질된 군주제와 살인적인 착취로 인해 혁명이 발생했고 군주제는 붕괴되었다. 이후 군주제가 아닌 사회주의 이념을 내세운 소비에트 연방이 건립되는데 그 중심에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 등이 있다. 사회 조직에서 100% 만족스러운 이념은 없다고 했던가. 모든게 평등할 줄 알았던 소비에트 연방 역시 군주제와 별 다를 것 없는,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심한 억압을 받는 사회를 만들었다.

이 사회적 배경과 자유억압사태, 그리고 변질된 정치이념과 그로인해 더욱 괴로워지는 국민들의 심정을 우화식으로 풀어놓은 것이 바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다.


인간과 다를바 없는 동물들의 정치



소설에서 동물농장에 있는 동물들은 주인이었던 인간을 몰아내고 스스로 농장의 주인이 된다. 그러다가 똑똑한 돼지가 그들위에 군림하게 되는데, 돼지들은 인간보다 더 심한 방법으로, 더 악랄한 전략으로 다른 동물들을 착취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옷을 입고, 두 발로 걷는가 하면, 보리를 심어 맥주를 마시고, 인간들과의 거래를 통해 돈을 벌어 자기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도 한다. 작가 조지 오웰이 다른 동물이 아닌 돼지를 왕좌에 앉힌 이유는 따로 있어보인다. 탐욕스러움을 의도적으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는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구별할 수 조차 없다. 방법만 다를뿐 착취 당하고 고된 노동을 평생해야 하는 건 바뀌지 않은 탓이다.

<동물농장>은 1945년에 간행되었다. 간행되자마자 엄청난 사회적 이슈를 일으키며 큰 인기를 끌게 되는데, 그것은 <동물농장>에서 풍자된 동물들의 정치가 인간사회에 그대로 접목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회의 부조리, 이상향, 여론 조작, 선동, 욕심, 권력, 계급 등은 동물농장 뿐만 아니라 사회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까닭에 어쩌면 우리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동물농장>과 다를바 없는 <인간 농장>일지도 모른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우화, 하지만 생각 하게 하는 작품



정치적 풍자와 비판이 어루어진 우화 소설이지만 책 자체가 우화형식이기 때문에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다. 동물들의 일상을 보며 때론 분노하고 때론 웃고 말도안되는 스토리에 상상력을 더해볼 수도 있다. 동시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문학작품이다. 요즘에도, 아니 당장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직장이나 동호회, 좀 더 큰 범위에서 지역사회에도 분명한 울타리를 가진 <농장>이 있고, 우리는 그 농장에 소속원으로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건전한 '사회'를 살고 있는가, 아니면 사회의 탈을 쓴 '농장'을 살고 있는가? 오늘날에는 군주제나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간에 대립관계가 없으므로 <동물농장>의 정치적 비판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심리학적 측면에서 접근해보면 우리들은 언제나 크고 작은 억압, 착취를 당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기까지한다. 누구나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가장 위험한 생각이다. 따라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정치적 비판의 목적을 잃었다 해도 사회심리적 목적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오늘, 내일, 앞으로도 누구나 한 번쯤은 꼭 읽어야 할 고전이다.


조지 오웰

작가소개

영국의 작가 · 저널리스트.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1903년 6월 25일, 인도 아편국 관리였던 아버지의 근무지인 인도 북동부 모티하리에서 태어났다. 첫돌을 맞기 전 영국으로 돌아와 명문 기숙학교인 세인트 시프리언스(예비학교)와 이튼 스쿨(사립학교)을 졸업한 뒤 영국의 경찰간부로서 식민지 버마에서 근무(1922~1927)한다. “고약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경찰직을 사직한 뒤, 자발적으로 파리와 런던의 하층 계급의 세계에 뛰어들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르포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1933)을 발표한다.

1936년은 오웰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해이다. 그해 잉글랜드 북부 탄광촌을 취재하여 탄광 노동자의 생활과 삶의 조건 등을 담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1937)을 쓰고, 스페인에 프랑코의 파시즘이 발흥하자 공화국 민병대 소속으로 스페인내전에 참전하여 부상과 배신을 당하는 경험을 기술한 『카탈로니아 찬가』(1938)를 펴내면서, 자신의 예술적·정치적 입장을 정리해나간다.

폐렴 요양 차 모로코에 가서 쓴 『숨 쉬러 나가다』(1939)는 그러한 큰 전환점 이후 쓴 첫 소설이자, 대표작 『동물농장』(1945)과 『1984』(1948)를 내놓기 전에 쓴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2차대전 중에는 민방위대인 ‘홈 가드’에 복무하면서 BBC 라디오 프로듀서로 일했고, 이후 <트리뷴>지의 문예 편집장, <옵저버>지의 전쟁 특파원 노릇도 한다. 소설가인 동시에 저널리스트로서, 오웰은 생계를 꾸리기 위해 엄청난 양의 글을 썼다. 생전에 11권(소설 6권, 르포 3권, 에세이집 2권)의 책을 낸 것 말고도 예리한 통찰, 특유의 유머, 통쾌한 독설이 번뜩이는 수백 편의 길고 짧은 에세이를 남겼다. 짧은 인생 말년에 쓴 『동물농장』과 『1984』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로 이름을 남긴다.


베스트트랜스

역자소개

세계 여러 곳에 숨겨진 작품을 발굴·기획하고 번역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번역뿐만 아니라 창작 집필을 하며 우리 콘텐츠를 국외에 알리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있다. 베스트트랜스는 기존의 번역가가 번역한 작품을 편집자가 편집하는 방식을 탈피한 새로운 번역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번역가와 편집자가 한 팀을 이뤄 잘 읽히는 작품으로 다듬기 위한 번역과 책임편집이 동시에 이뤄지는 방식이다. 번역 단계에서는 직역직해가 아닌 원문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리말의 장점을 살려 좀 더 매끄럽고 유려한 문장으로 손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레 미제라블 명문·명대사》는 편집 단계에서 꼽은 주요 명문과 어휘를 보기 쉽게 엮은 책이다. 《레 미제라블》도 읽고, 어학서로도 활용할 수 있게 만든 참신한 어학서이다.


책 밑줄긋기

"그들은 지금의 삶이 고단하고 힘들다는 것, 자주 춥고 배 고프다는 것, 잠자는 시간을 빼면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동물농장의 주인 여러분, 당신들에게 다스려야 할 하급 동물들이 있다면, 우리 인간들에겐 다스려야 할 하층 계급들이 있습니다."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


<동물농장의 7계명>
1.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2.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동물 농장 - 10점
조지 오웰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더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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