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언의 맛있는 책 읽기(191) : 작가 수업 - 글쓰기 지침서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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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시언의 맛있는 책 읽기(191) : 작가 수업


나는 지금껏 제대로된 글쓰기 수업이나 책쓰기 강의같은걸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관련된 내용으로 강의를 한 적도 없다. 그러면서도 지금껏(많이 부족한) 단독저서 2권을 펴냈고, (책보다 더 부족한)개인 블로그에 수백개 이상의 칼럼과 에세이를 썼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쓸 것이고, 가능하다면 저서도 꾸준히 출판할 예정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글쓰기 수업이나 책쓰기 강의 같은걸 들어본 적이 없다. 나에게 글쓰기와 책쓰기를 가르친 것은 다름아닌 '책'이었다. 책을 읽으며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불태웠고, 책을 읽다가 '나도 저서를 출간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와 자신감을 얻었다. 책쓰기 방법에 대해 가르쳐준 것도 관련 서적이었으며, 글을 쓰라고 내게 매번 재촉함과 동시에 가슴속에서 나도 모르는 단어들과 문장들이 튀어나오게 만드는 촉매제 역시 책이다. 시집, 공상과학과 추리소설, 역사서, 위인전, 두뇌심리 과학서적, 자기계발서 등 지금껏 읽었던 모든 책들이 나에겐 '강사'였고 '선생'이었으며 '스승'이었다. 책을 통해 작가 수업을 받은셈이다.

요즘은 문자메시지, 블로그, SNS, 메신저 등에서 하루에도 많은 양의 글을 쓰는 시대다. 꾸준히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작가가 됨을 의미한다. 작가는 화가, 음악가처럼 예술적인 감각과 동시에 독창성이 중요한 포지션을 갖는다. 강사로부터 배운 글쓰기에서 예술과 독창성은 애초부터 사그라들지 모른다. 그 누구도 자신의 스타일을 포함하지않고서는 무언가를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강사로부터 배운 글쓰기는 나만의 글쓰기가 아니라 '강사의 스타일'로 글을 쓰는 것이 될터다. 만약 내가 글쓰기를 누군가로부터 배웠다면 나는 일찌감치 글쓰기를 포기하고 두려움을 갖게 되었거나, 자신이 하고싶은 이야기보다는 강사를 만족시켜줄만큼 뛰어난 글을 써야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아무런 글도 쓰지못하는 공황장애를 앓았을지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 책 <작가 수업>은 1934년에 쓰여진 책이라곤 믿을 수 없을만큼 현대적이며 근본적인 작가의 문제를 다룬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아티스트 웨이> 등에서 소개된 모닝 페이퍼와 프리 라이팅으로 불리는 기법을 소개하기도한다. 그래서 이 책은 “현대의 모든 글쓰기 지침서의 어머니”라는 애칭을 갖고있다.

작가란 모름지기 독창성이 결여되면 안된다.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의 저자 레이먼드 챈틀러는 이것을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스타일은 작가가 가장 시간을 들여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투자라는게 그의 설명이다. 내가 두번째 저서를 내는 과정에서 내 글쓰기 스타일에 대한 많은 피드백을 받았다. 좋다는 얘기 뿐만 아니라 나쁘다, 호전적이다, 너무 가르치려들거나 압박을 주려는 투다 등 많은 의견이 있었다. 전부 맞는 말이다. 한때 피드백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을 하면서 글쓰기 스타일에도 약간의 변화를 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이 세상 모든 독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게 진리라면, 나는 내 스타일을 고수하는 편을 택하기로 했다. 본격적인 독서를 시작할 때 주로 외국번역서적을 많이 접했던 까닭에 스타일이 호전적이고 한국형이라기보다는 다소 외국 번역서적같은 문체가 정립되었고, 그것이 편하게 이루어졌다. 어쩌면 이 글 역시 외국번역서적 스타일의 호전적인 문장일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내 스타일이 좋으며, 그것으로 충분히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작가 수업>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주목해야 할 부분은 크게 2가지다. 첫째, 작가의 근본 문제는 개인의 심리적인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있는 부분을 주목해야한다. 이것은 단순히 글쓰기 기교나 책쓰기에 대한 방법론보다 훨씬 상위개념이다. 기술이나 기교를 배우는건 금방이고, 또 효과도 바로바로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가의 입장에서 아무런 쓸 말도, 주제도, 아이디어도 없는데 기술만 있다면 뭐할텐가? 글쓰기 수업에선 학생들을 진짜 말 그대로 '학생'처럼 다루는 경우가 많다고한다. 숙제를 내고, 거의 반강제적으로 글쓰기를 강요하다보니 정말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하고싶은 말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강제성에 파묻혀서 열정의 불씨는 꺼진다. 두번째 주목해야하는 이유는 본문 내용이라기보다는 이 책의 멋드러지게 삽입된 위대한 작가들의 흑백 사진 때문이다. 그들의 책 읽는 모습과 글쓰는 일상적인 모습, 작업 환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을만큼 감동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책 밑줄긋기

작가를 한편으로는 버르장머리 없는 어린아이로, 다른 한편으로는 고통받는 순교자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건달의 모습을 한 괴물로 바라보는 시각은 지난 세기가 물려준 유산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유산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전에는 작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훨씬 건전했다. 즉 작가는 보통 사람보다 마음이 더 여리고, 공감을 더 잘하고, 더 진지하고, 취미가 더욱 다양하고, 군중 심리에 덜 좌우된다는 생각이 주를 이루었다.

<작가 수업>에선 글쓰기와 무의식의 연관성을 강조한다. 저자 도러시아 브랜디는 클래식이라 불리는 이 책에서 글쓰기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낱낱히 공개한다. 이 책에는 작가가 되는 데 불필요한 습관을 버리거나 필요한 습관을 들이는 방법, 의식과 상보적인 입장에서 무의식을 이용하는 법, 물 흐르듯 글을 쓸 수 있는 비법, 본보기가 될 만한 작품을 모방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법, 작가의 눈이 글을 쓰기 위한 ‘순수한 시각’을 되찾는 법, 예술가의 무아지경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적 혼수 상태’에 빠지는 법, 자신의 속박된 글쓰기 재능을 해방시키는 법, 작가로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다른 작가와 다른 자기만의 독창적인 글을 쓸 수 있는 비결, 작가로서의 독서법, 사교 생활과 취미의 득실과 선택 방법, 글쓰기 도구와 환경을 갖추는 법, 작가에게 도움이 되는 휴식을 취하는 법, 자신의 작품과 작업 방식을 평가하는 법 등 작가에게 필수적인 지침들이 쉽고 명료하게 제시되어 있다.

책 밑줄긋기

천재의 재능이 마르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천재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은 뭐든 활용한다. 천재에게 너무 깊숙이 가라앉아 되불러낼 수 없는 경험이란 없다. 천재는 어떤 상황을 막론하고 상상력에 기대 거기에 딱 맞는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다. 무관심과 권태의 나락에 빠져드는 것을 거부한다면 삶의 모든 측면을 글의 소재로 되살려낼 수 있다.

짧지만 강력한 내용의 글이 포함된 책이다. 작가가 꿈인 사람이라면, 글쓰기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그 어떤 책보다도 먼저 찾아봐야할 책임에 분명한데, 사실상 글을 조금 써 본 사람들에게 더 큰 공감과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이 책은 작가의 마음가짐에 대한 현대판 고전이다.

<작가 수업>에선 말그대로 수업처럼 다양한 방법론들이 나타나는데, 나는 그것들을 모두 고스란히 답습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시도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은 취하고, 맞지 않는 방법은 버리면된다. 위대한 방법론이라고 할지라도 세상 모든 작가에게 통용될리는 없다. 이러한 부담감과 압박감이야말로 작가의 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아닐지.

사람들은 작가라고하면 엄청난 재능을 갖고 태어난 소수의 선택받은 인물처럼 여긴다. 어린시절부터 고전 가득한 서재나 다락방 한켠에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책을 읽으면서 몽상에 빠지고, 8살때부터 각종 글쓰기 경연대회에서 수상을 한다든지 최연소로 문예에 당선되는 등의 낭만적인 일을 떠올린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않다는게 내 생각이며 이 책 <작가 수업>에서의 이야기다. 나는 초, 중, 고, 대학교를 다니면서 숙제, 일기, 보고서 하나 제대로 못쓰는 일종의 '활자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껏 학교에서 만났던 수 많은 선생들과 교수들조차 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치지 못했다. 나는 나 스스로 원할 때 배웠고, 스스로 부딪히며 익혀나가야만 직성이 풀렸던 인간이다. 심지어 연필잡는 방법조차 나 스스로 연구해서 익혔다! 그래서 본의아니게 이상한 연필잡이 손모양을 가졌지만 글만 잘쓰면 되는거 아닌가! 젓가락질, 키보드 타이핑을 위한 손가락 배치 등 모든게 이상하지만 나만의 스타일이 있고 남들 못지않게 작은 멸치나 콩을 쉽게 낚아챌 수 있으며, 한컴타자에서 800타 이상의 한글 타이핑을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글쓰기는 무엇보다 재미있다. 얼마나 외로운 세상인가? 얼마나 고독한 세상인가? 글쓰기는 영혼의 치료제이자 가슴속 응어리를 표출해내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작가란 현실적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직업일지 모른다. 그러나 꿈이란건 도전하는데 의미가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작가를 꿈꾸지만 한편으론 포기한채 살아간다. 괜히 이상한 글쓰기 수업을 청강하면서 두려움만 갖기보다 <작가 수업>을 통해 대부분의 작가들이 찾았던 모던 클래식의 글쓰기 강의를 읽어보자.



작가 수업 - 10점
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강미경 옮김/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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