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게 욕 좀 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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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게 욕 좀 해줘요!

살다보면 가끔 무자비하게 욕 먹고싶을 때가 있다. 주위에 아무도 욕하는 사람이 없을 때, 말하자면 아무도 내게 진지한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 무언가가 잘못되어간다는 작은 느낌과 불안, 공포, 절망 따위의 감정이 들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을 때. 발전이 없을 때. 막막할 때. 스스로가 싫어지고 미워질 때. 욕이 그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 행복할 때, 과연 이 행복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될 때, 갑작스럽게 상승기류를 탄 느낌이나 행운이 찾아올 때 역시 그렇다. 아이러니다.

보통은 스승이나 멘토가 제자를 욕하거나 지적한다. 지금껏 내 멘토를 대신한건 책이었다. 책이 멘토일 때, 내가 원하는 멘토를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만날 수 있었고, 시간내어 페이지를 펼치면 혼령이 살아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책에서 만났던 많은 위인들과 저자들의 이야기는 내 머리를 후려쳤고 개인적인 발전을 엄청나게 이룰 수 있었다. 1년동안 책 한권 안 읽는 젊은이가 얼마나 많은가. 이런 생각으로 자위했다. 자기합리화만이 계속해서 나를 끌고 앞으로 나가는 원동력이었다.

멘토의 이야기를 비판적으로 보지않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사소한 것에서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전보다 논리적이 되고 이성적이 되었다. 간접적으로나마 시야가 넓어졌다. 알게 모르게 일상생활에도 도움을 받았으리라.

수 년전, 어떤 책에서 '당신이 글쓰기를 좋아한다면 책을 써라!'는 한 문장을 읽고 책을 쓰기로 결심했고, 신기하게도 몇 개월 뒤 첫번째 저서 <1인분 청춘>을 출간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작가가 되었다.

어릴때 내 꿈은 선생님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장래희망란에 항상 '선생님'이라고 적었고 고등학교 졸업 후 사범대에 지원했으나 낙방했다. 장래희망만 선생님이지 공부라고는 쥐뿔도 안한 학생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내겐 누군가에게 지적하고 케어해주고 싶어하는 이상한 습성이 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되려고 했는지도 모를일이다. 아무튼 이 습성은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다. 습관처럼, 마치 절대 바꿀 수 없는 외모나 목소리처럼 딱 고정된, 나라는 사람의 전통인냥 나도 모르게 나타난다. 불쑥.

덕분에(?) 그동안 친구들에게 싫은 소리도 많이했었던 것 같다. 싫은 소리 좋아할 자 누구인가. 처음에 그들은 난색을 표했다. 나는 이 성향을 어떻게해서든 고쳐야만하는가에 대해 깊이 고민했었지만 그렇게하지 않기로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 억지로 스스로를 고치려 들지않았다. 말 잘하는 친구가 부러워 따라한 적도 있었고, 인기 많은 친구가 부러워 그의 방식을 벤치마킹한 적도 있었지만 안 맞는 옷을 입은마냥 결과가 좋을리 없었고, 제대로 되지도 않았다. '나는 나다!'라고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비로소 내 장점과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나라는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에도 가끔씩 '욕 먹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전화가온다. "잔소리 좀 해달라"는 내용이다. 갑자기 전화와서 잔소리를 해달라니. 할 말도 없거니와 잔소리할 소재도 없으니 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잔소리나 욕도 어느정도 이해와 감정교류를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얘기다.

학생 신분을 벗어나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다양한 일들을 접하면서 나는 많은 계단을 올라왔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바닥이었으니 낮은 계단을 오르는건 쉬운 편이었을지도. 조금씩 조금씩 오르면서... 나는 어떤 부분에 있어서 기존의 세계와 멀어졌다. 접하는 세상이 바뀐거다.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주변을 이해하는 순간이 바뀐거다. 내 친구 중에서는 지금껏 집에있는 형광등 한 번 안갈아봤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전기세 한 번 납부해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다. 모든 사람이 형광등 갈 줄 알고 전기세 내는 방법을 익혀야하는 건 아니지만, 형광등 갈아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세계는 다르다.

남들에게 잔소리를 하니 정작 내 자신에게 욕하는 사람이 없어졌다. 뭐, 외모가 어쩌니 성격이 어쩌니 같은 시덥잖은 욕 말고 정말 진지한 욕. 이를테면 인생관에 대해, 세계관에 대해, 꿈이나 목표에 대해, 삶의 방식에 대해 욕하는 사람이 없으니 오히려 외로운 기분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건 맞는건지, 아니 살아있기는 한 건지조차 점검하기 어렵다. 때로는 모든게 희미하고 안개자욱한 새벽처럼 혼란스럽다.

누구라도 좋으니 나를 논리적 혹은 이성적으로 설득해서 욕 좀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가벼운 내 반박을 제대로 무마시켜줄 누군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점이나 타로카드 같은걸 거의 믿지 않는 편이지만, 희망말고 오로지 욕만 해주는 점쟁이가 있다면 한 번 찾아가보고 싶은 밤이다.


Featured photo credit:  Demi-Brooke via flickr 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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