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제2회 구시장 고객감사 축제, 재래시장 살리기,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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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인의 아들이다. 지금은 매우 자랑스럽지만 어릴적엔 부끄럽게만 느껴졌던 나의 아버지는 장사꾼이었다. 나는 코흘리개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시장통에서 놀았다. 정말 많이도 따라다녔다. 당시에 아버지는 경북 북부지역의 5일장을 돌며 장사를 했다. 안동/진보/영양/영주/청송이 그곳이었다. 제일 마지막 청송은 작은 장터라, 계절이나 상황에 맞게 다른 지역으로 대치될 때도 있었다. 
전쟁터보다 더 전쟁터같은 재래시장의 장날. 시끌벅적한 그곳에서 나는 어린시절부터 사람간의 관계에 대해 많은것을 배웠던 것 같다.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고객과의 관계, 책으로는 배울 수 없는 어떤 인간 내면의 깊숙한 욕심과 범죄 아닌 범죄들을 많이 보고 자랐다. 쉽게말해서 사람들의 가장 노골적인 부분들을 보면서 자랐다. 점포에서 장사를 하는것이 아니라, 정해진 장소에서 행상하는것이었기 때문에, 나의 피부는 어릴적부터 까무잡잡하다. 뭐 피부색이 나쁘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일부러 선텐도 하고, 구리빛 피부를 만들기 위해 돈을 투자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아. 나는 물론 몸은 하얗고 얼굴과 손등만 까만 편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지금껏 나도 모르게 관심이 가고, 나도 모르게 능력을 발휘했던 온라인 바이럴 마케팅쪽이, 실제로는 상인의 피를 물려받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요즘 이슈화되는 재래시장 활성화 및 그와 관련된 여러가지것들에 관심이 많다. 나와 비슷한 어린시절을 보내는 또 다른 ‘내’가 엄청나게 많을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재래시장은 나의 ‘고향’이자, 내 어린시절의 ‘놀이터’이며, 재래시장 상인 모두가 나의 어른이고, 그들의 자식은 모두 ‘내 친구’처럼 느껴진다.


2012년 6월 28일(목)부터 29일(금)까지 이틀간 안동 구시장의 찜닭골목 일원에서 ‘제2회 구시장 고객감사 축제’가 열렸다. 개월수로 치자면 벌써 5개월 가량이 지났다. 사실 제1기 안동시 공식 온라인 홍보단으로 위촉되어(안동시 공식 온라인 홍보위원으로 위촉되었습니다.), 취재도 할겸 구경도 할겸해서 겸사겸사 갔었다. 촬영과 인터뷰는 조금했으나, 도무지 포스팅하고 홍보할 마음이 들지않아, 홍보단 활동이 끝난 이제서야 포스팅을 하게 되었다.

내가 도착했던 건 금요일 점심시간 쯤이었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음악소리 때문에,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인상이 찌푸려졌다. 별 호응도 없고 사람도 없을것이라 예상했으나, 실제론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모여있었다.
한가지 의문. 그들은 왜 아침부터 여기에 모여있는 것인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들은 행사가 너무 재미있어서도 아니고,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 기다리는것도 아니며, 재래시장이 너무 좋고 떠나기가 싫어서 거기에 있는것이 아니었다. 아침부터 나누어 준 상품권의 추첨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주최측에서는 대개 그렇듯 전략적인 방법을 통해, 상품권 제비뽑기를 행사가 마무리 될 쯤에 한다. 그래야 상품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상품권이 사람을 부르고, 그 다음부터는 사람이 사람을 부르게 되면서 구름인파가 형성되는데, 결과적으로 보자면 주최측에서 사람 모으기는 성공을 한 듯 하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점은, 이 행사는 잠깐동안 사람을 모아서 사진이나 찍고 마는것이 아니라, 진짜로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한 취지로 마련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행사는 성공인가? 실패인가?




기업에서 1명의 직원이 짤린다는것은 그를 포함한 그의 가족 모두의 수입이 없어지는것을 뜻한다. 재래시장에서 1명의 상인이 장사가 되지않아 수입이 없어진다는것 또한 그를 포함한 그의 가족(최소 2~3명) 모두가 수입이 없어지는것을 뜻한다. 그래서 재래시장을 살리려면 시장 자체가 아닌 사람을 먼저 살려야 한다. 이 역설적인 해답은 매우 쉽지만, 그림자에 가려진 채 세월만을 기다리고 있는것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시장 상인을 살려야지 시장을 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은 시장만 살리면 상인이 살아날것으로 판단하여 시장 살리기라는 타이틀 아래 하드웨어 지원만 이루어지고 있으나, 몇 년간 발전이 없는 모습을 보면 어느정도 계획을 변경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시장 상인을 살리면 시장은 저절로 살아난다. 마치 경제를 살리려면 기업을 살리기 이전에 인재를 육성해야 하는것과 같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최신식 무기를 구비하는것보다 먼저 그 무기를 운용할 지휘관이 있어야 하는것과 같다. 기업이 아무리 좋아도 그 기업을 이끌고 발전시킬 사람이 없다면 다 무슨 소용인가? 무기가 아무리 좋아도 격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지휘관이 부재하다면 그 무기가 무슨 소용인가?


'고객이 최고야'라는 유니폼 조끼를 입고 있는 모습은 사람마다 호불호가 다를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별로라고 생각했다. 고객이 최고야는 시장 상인들이 봐야하는 문장이지, 고객이 봐야하는 문장이 아니니까. 얼핏보면 고객을 최고로 모시는 재래시장 상인들이라는 분위기가 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하긴 하다. 그리고 실제로 고객을 최고로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재래시장에서 친절은 찾기 힘들다. 아마도 '팔아도 그만, 안팔아도 그만'이라는 인식 때문인 것 같다. 사실 저렴한 가격으로 인해 마진이 얼마 남지 않기 때문이다. 고작해봐야 몇 백원정도의 마진을 남기려고 까다로운 고객에게 휘둘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상인들도 자존심이 있고, 커리어가 있고, 나이가 있다. 그들도 사람이다.

마진을 올릴 것인가? 그렇다면 저렴하다는 재래시장의 이미지가 훼손된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면서까지 몇 백원 마진에 만족할 것인가? 그러기엔 커리어가 용납하지 않는다.

이 부분이 사실, 재래시장의 근본적인 뿌리 부분인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콘텐츠화 시키고 스토리텔링을 가미한다고 하더라도 상품 자체를 판매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미지수다. 어려운 부분이다.




축제라서 그런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많았다. 노래자랑, 경품추첨, 시식코너 등이 그것이다. 단조로울것이라 생각했으나 내 생각보다는 다채로웠다.

열심히 사진을 촬영하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찜닭 한마리가 투척되었다.
찜닭 한마리를 던져주면 엄청나게 많은 손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줄도없고 질서도 없다. 음식을 배급해주는 사람은 당연히 없다. 결국, 자리를 잘 잡아서 먹을 수 있는 사람만 계속 먹고, 자리를 못 잡은 사람은 계속 못먹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동선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곳이나 설치된 테이블에 던지듯이 투척 된 시식음식이니 질서가 없을 수 밖에 없다. 배급해주는 도우미 1명을 배치하고, 동선을 짜서, 가이드라인을 설치하면 해소될것으로 보인다. 음식을 제공하는 업체의 입구 모퉁이에 최종 도착지인 테이블을 설치하고, 거기에서 시식해 볼 수 있도록 동선을 짠다면 괜찮은 마케팅 방법이 될 수 있다.




길 가운데에 설치 된 사진 전.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마음에 들었다. 사진들이 모두 참 좋았다.

진정한 재래시장을 한꺼번에 구경할 수 있었다.





사진은 좋았으나 이 방법은 좋지 않았다.

즉, 버젓이 장사를 하고 있는 상점의 나무기둥에다가 스테플러로 사진을 박은 것 말이다.

사진은 아주 좋았으나.... 그 설치가 아쉬운 장면이다.

사진 몇장을 더 설치 할 공간도 부족한게 현재 안동 구시장의 현실이다.

이런 사진들은 구시장 내부에 있어야 할 게 아니라, 구시장 밖. 그러니까 사람들을 구시장으로 끌고 들어오도록 만들 장소에 배치되어야 알맞다. 가령, 안동역, 버스터미널, 주차장 등이 그곳이다. 그리곤 사진 옆에 안내표시 혹은 이정표. 구시장의 장점.

애정에 호소해갖고는 지갑을 열 수 없다. 장점을 알려야 한다.

장점이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앞으로의 숙제.




무대 뒷 편.

각종 음향장비들이 노출되어 있어서 썩 보기가 좋지만은 않았다.

어쨋거나 꼭 필요한 장비다. 행사를 진행은 해야하니까. 마이크나 노래가 없다면 흥이 나질 않으니까.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단 한 순간도 쉬지않고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고 연주하다보니... 귀가 멍멍해지고 사람의 정신이 온데간데없이 이상해지는 느낌을 받는것이다. 마치 밤새도록 시끄러운 클럽에서 놀다가 아침녘에 밖으로 나왔을 때의 그런 느낌....

행사 시간을 최적화 하거나 볼륨을 낮추거나 무대 설치 장소 이동을 고려해보면 좋을 것 같다. 아무튼 대안이 필요하다. 이렇게 시끄러워서야 고객이 왔다가도 도망갈 판이다. 만약 구시장에서 어떤 물건을 구매하고자 하는데, 행사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판매상과 대화자체가 불가능하다면 어떻겠는가?




무대 옆에서는 찌짐(전)도 팔고, 떡도 팔고 있다. 떡 같은 경우 직접 쳐 볼 수 있게 체험코너를 만들어 두었다. 연약한 여자가 들기에는 약간 무거운 편이지만, 할만한 정도다. 직접 친 떡을 사먹는것에도 약간의 비용은 지불해야 한다. 이렇게되다보니 사람들이 떡을 쳐보기만 하고, 실제로 사먹어 보는 경우가 많지 않다.
가격도 매우 저렴하고 맛도 괜찮아 보이는데, 떡이 팔리지 않는 이유는 뭘까.
공짜로 주기에는 비용이 안되고, 팔자니 안팔리고....
차라리 떡을 공짜로 조금씩 나눠주는 대신, 나눠주는 상품의 수를 줄이는건 어떨까.
떡을 직접 제작하여 칠 게 아니라, 후원 받는 방법을 모색해본다면 괜찮은 마케팅이 될 수 있다. 재료비는 업체에서 지원하고 팔리든 안팔리든 떡을 나눠주는 대신, 떡을 담는 접시 따위에 브랜드명을 PPL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약간의 역발상을 할 필요가 있다. 즉, 떡을 쳐볼려면 떡 값(2000원 가량)을 먼저 지불하게 하는 방법. 그리곤 떡을 치고 자신이 친 떡을 자신이 가져가서 먹으면 된다. 그럼 이제 '사람들이 돈을 내면서까지 떡을 칠까?'라는 문제가 남는다. 미인계를 활용해보자. 잘생긴 남자 혹은 예쁜 아가씨를 '떡치는 미남/미녀'라는 타이틀을 걸고 방망이 들고 호객행위를 하면 꽤나 팔릴 것 같다.
두번째 방법. 오락실에 가보면 망치를 내려쳐서 점수가 올라가는 디지털 오락기가 있다. 이것을 아날로그화시켜서 떡을 치면 저울이 올라가 점수(물론 아날로그 돌림판 등)를 볼 수 있고, 1등 점수를 이긴 사람에게는 준비 된 상품과 떡을 공짜로 주는 방법도 괜찮아보인다.




이번 행사는 전통시장 고객들을 위한 축제로 고객서비스를 통해 매출 증대를 도모하고 위축된 전통시장 상권 활성화에 그 의의를 두고 있다. 보도된 자료에 의하면 행사 관계자는 “이번 축제는 고객유치를 위한 통큰세일과 문화공연 등 다양한 판매행사가 펼쳐지며, 행사에 참여하는 구시장 내 상가에서는 할인품목 알림판을 부착해 50~10% 내외의 통큰세일을 실시하게 된다.”고 전했다. 같은 자료에서 안동시 관계자는 “그동안 시에서는 아케이드 설치나 주차장 등 하드웨어적인 부분 지원에 노력해 왔지만 앞으로는 이번 행사와 같이 공동마케팅 등 소프트웨어 부분에 있어서도 협력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논의 하겠다.”며 “많은 시민들이 전통시장을 이용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행사는 이미 끝났다. 결과는 어떨까.
나는 행사 이후로도 구시장을 자주 방문했다. 그리고 재래시장에서 파리가 날린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활성화되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보았다. 행사는 단발성에서 그쳤다. 대표적인 예로, 위 사진들을 보면 대게 어르신들이 참여하고 있으나, 실제로 재래시장을 살리는 사람들은 20~40대인 소비층이다. 이들을 끌어들이지 못하고선 재래시장에서 현금이 흐르게 할 수 없다.

재래시장이 암울해 진 것은 시대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지, 행사가 없어서가 아니다. 가령, 제대로 된 주차공간을 확보하지 못해서 고객을 잃었다. 재래시장은 나름대로의 가치와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미래를 준비하지 못했다. 사람들의 인식에 ‘재래시장은 청결하지 못하고, 지저분하고, 불편하고, 복잡하다.’ 이미지가 각인되어버렸다. 이런 인식을 바꾸는건 단발성 행사같은걸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게 아니다. 가장 깊숙한, 뿌리부터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래걸리더라도, 터무니없는 짓처럼 보여도 재래시장을 살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야한다.
재래시장에서 행사같은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실제 장사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행사 때문에 오히려 장사에 방해를 받는다고 한다. 고객들이 행사 구경으로 인해 상품 구경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는 벌써 2회째를 맞이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진행된 것. 아마 내년에도,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것 같다. 행사 자체가 나쁜것도 아니고 행사의 기획이나 주최측이 잘못한것도 아닌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재래시장을 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색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고객감사 행사는 진짜 재래시장 살리기가 되어야지, 현혹성 소프트웨어로 전락하면 안된다.
이 축제를 기획하는 기획 주최에 실제 고객층인 20~40대 고객, 실제 시장 상인이 꼭 포함되어야만 한다. 가만히 앉아서 책상 앞에서만 나온 아이디어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두마리 토끼를 좇다간 자신의 사냥개까지 잃을 수 있다. 보여주기식 행사라면 제대로 빵 터지게 보여주던지, 아니면 눈치보지 않고 욕 먹을 각오를 하면서 재래시장을 살리던지. 둘 중 하나밖에 남지 않아보인다. 재래시장을 살리려면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해선 안 된다.
자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번 행사를 주최한 중소기업청과 시장경영진흥원의 기획단에는 관련된 교수를 포함한 권위자들로만 구성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실제 필드에서 일하고, 실제로 보상 혹은 피해를 입을 사람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괴리감있는 축제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론적으로 완벽한 그들도 포함되어 있어야 하지만, 그들로만 구성된 단체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물과 기름처럼 갭이 있다.


여러가지로 아쉬운 행사였다.
안동에만도 구시장, 신시장, 서부시장 등 여러개의 시장이 있고, 아직도 거기에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을 경상북도로 확대하면 어마어마한 수치가 된다.
시장 관계자들 모두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는 좋아질것으로 기대를 해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젊은이들이 재래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하면 재래시장을 활성화 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연구해보는 문화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그들을 기획단으로 모집하고 끌어들여 소셜 기획단처럼 한다면, 반응이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이것은 일자리창출+재래시장 살리기라는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 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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