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믿는 다는 것

반응형

대학생 시절. 수업시간에 하라는 학과공부는 안하고 컴퓨터로 블로그나 하고있으면 어김없이 뒷통수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보면 교수님이 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그땐 블로그란게 뭔지도 잘 몰랐다. 아니, 어쩌면 나같은 꼴통 학생이 블로그를 포함한 무언가를 꾸준히한다거나 그런 것 '따위'로 어떤 수익모델을 찾고, 어떻게 인생에 도움이 되도록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일 수도 있다. 심지어 나 조차도 장래에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계획이 없었으니 말 다했다. 교수님은 이력서랑 자기소개서나 쓰라고 압박했다. 난 졸업반이었다.

큰 마음먹고 도전했던 창업에 실패 후 몇 년이 지나 첫번째 저서 <1인분 청춘>이 출간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가난한 백수였다. 스스로 직장에 들어갈 마음도 없었고, 마음에 드는 직장도 없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눈에 나는 그저 취업실패자였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집에서는 연신 책쓰는 작업 '따윈' 집어치우고 번듯한 직장에나 들어가라고 말했다. 책으로 벌어들인 돈이 단 한푼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패잔병의 기분으로 작업실로 되돌아갔다. 잘 아는 동네 동장님은 공장 취직자리를 소개해준다 하셨지만 정중하게 거절하기도했다. 내가 하고싶은건 그게 아니었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가까운 미래의 자화상에 대해, 나의 세계관에 대해, 내가 꿈꾸는 어떤 이미지나 형상에 대해 누군가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추상적이고 거의 비현실적이라서 SF 소설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를 수긍할 사람은 찾기 힘들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안심을 원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내게 안심을 요구했다. 나에게 '어떻게 살 거냐?'고 물었을 때, '닥치는대로 살겠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이건 소통이나 대화가 아니고 정답을 물어보는 하나의 문제였다. 모범답안은 '취업하겠다'거나 '아르바이트하겠다'라든지 '어디 학원에서 자격증을 따겠다'처럼 전형적인 것들이었다. 가족을 포함한 사람들의 생각에 당시의 나는 대학생 때 모아놓은 몇 푼 안되는 돈이나 까먹는 '넘버원 백수'였다.

"제발 말 좀 들어라"
"제발 좀 평범하게 살아라"
당시에 시도때도없이 들었던 말들이다. 이런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관자놀이에 총을 맞는 기분이 들었지만 우수하고 유능한 교수님들과 선생님들조차 나를 평범하게 만들진 못했다. 이쯤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보다 스스로를 먼저 믿고보는 성격을 준 신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나 자신의 길이 나에겐 정답'이라는 약간의 거만함 섞인 생각을 가지고부터, 나는 이전보다 창의적이 되었고, 남들과 비교되는 차별화 포인트를 가질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중학생 시절에는 교실에서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홍당무가 되고 오금을 덜덜 떨던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 수십 혹은 수백명을 앉혀놓고 강의할 수 있을 거라곤 당시의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책을 내 작가가 되고, 네이버에 이름을 검색하면 프로필이 나타날 것이라곤 지금껏 나를 가르쳐주었던 모든 선생님과 교수님도 몰랐을 것이다. 지방 촌놈 주제에 공부도 못했으니 대충 어디 공장이나 조그만 회사에 들어가서 월급 따박따박 받고 살아가는 평범한 삶을 예상했을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내 상상은 꿈이 되었고, 지금 어느정도는 현실이 되었다.

내가 책 1권을 냈을 때, 사람들은 무표정이었다.
내가 책 2권을 냈을 때, 사람들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책 3권을 냈을 때, 사람들은 잠깐 박수를 쳤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에 개의치 않아야한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기위해 인생을 살아가는게 아닌 까닭이다. 대중들은 가까운 사람보다 잘 모르는 먼 사람이 대단한 일을 해낼 때 환호성을 지르는 법이다.

현재 자신의 위치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의 조언을 귀담아 듣는건 괜찮은 방법이다. 하지만 맹신하는건 나쁜 방법이다. 상대방은 단지 자신의 눈으로 본 세계를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즉, 어떤 경우에서건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 그 누구와도 믿음에 관한한 서로 베타적일 수 없다. 이건 가벼운 선택의 문제다. 나는 지금껏 그저 후자를 골랐을 뿐이다. 나는 '논어'의 이야기 모두에 공감하지 않는다. '플라톤'의 이야기에 일부는 동의하고 나머지는 동의하지 않는다. 데일카네기, 벤저민 프랭클린, 피터드러커, 아들러, 프로이트의 이론에도 100% 동의란건 없다.

스스로를 믿어라는 내 이야기조차 안믿어도 된다. 정답 같은건 애초에 無. 그러니 다른 사람 이야기말고 스스로를 먼저 믿어보면 어떨까. 전혀 색다른 세상이 현실로 펼쳐진다! 그 누구의 인생이든 스스로가 주인공인 반전영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응형

'칼럼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른즈음에  (0) 2015.06.11
나는 왜 책을 읽는가?  (1) 2015.05.21
스스로를 믿는 다는 것  (2) 2015.05.17
당신은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2) 2015.05.12
나는 왜 글을 쓰는가?  (3) 2015.03.24
누가 내게 욕 좀 해줘요!  (2) 2015.02.27

댓글(2)

  • 2015.05.18 03:11 신고

    대단하십니다^^
    정말 앞길이 안보이는데도 자기의 길을 꾸준히 걸어간다는게 결코 쉽지만은 않은 길인데 말입니다^^

  • 2015.05.18 09:10 신고

    아직도 인생은 진행형 입니다~
    저도 제가 살아온 길이 어떤지 아직도 모르지만
    왠지 이웃님의 삶은 스스로에게는 정직한 삶이 아닐까요^^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