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에 탄 시내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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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에 시내버스를 탔다. 생소했다. 많이 바뀐듯 보였지만 확 달라진 것 같지도 않았다. 시내버스는 마치 마음 속 첫사랑의 기억처럼 그 모습 그대로였다. 예전처럼 그 자리를, 그 방향을 계속 멤돌고 있었다. 나만 멀어졌을 뿐이었다.

자가용을 운전하면서부터 시내버스 탈 일이 이상하게도 없었다. 가까운 곳도 차로 이동했고 그것이 편리했다. 관리비나 보험료를 제외하고 단순 차비만 생각하면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자가용이 저렴한 것으로 계산되었다. 술취해 집으로 갈 때, 폭설이 내려 자가용 운전이 불가능할 때면 택시를 이용했다. 무엇보다 자가용은 편리했고 빨랐으며 그 공간에서 나는 자유였다. 새벽까지 야근하고 쓸쓸히 집으로 돌아갈 때 차 안에서 얼마나 슬픈 노래들을 혼자 불렀던가.

학창시절부터 시내버스를 하루 두차례씩 꼬박 이용하면서도 불편하다는 생각은 거의 없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당연한 것이었고, 자칫 눈 앞에서 버스를 놓칠때엔 살짝 짜증이 났지만 그건 버스 탓이라기 보다는 내 탓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축소판이 아닌가!

정류장은 겨울엔 추웠고 여름엔 더웠다. 비오는 날이면 신발이 다 젖고 버스에서 우산을 잃어버리기도 일쑤였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10분, 20분, 30분을 기다린 적도 있었다. 친구와 함께 기다릴 때도 있었고 홀로 기다릴 때도 있었다. 정류장에서 반가운 친구을 만나 담소를 나누기도 했고, 만원 버스 안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하차지를 놓쳐 몇 정거장 더 간 다음 내려야할 때도 있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그 길이 순탄하지 않았지만 익숙한 풍경이었고 어색하지 않았다. 교통카드를 현금으로 충전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되는 일 중 하나였다. 시간을 내어 충전을 해야했고 교통카드가 빵빵하게 충전될 때면 어차피 내 현금이 카드에 들어간 것 뿐이지만 부자라도 된 듯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는 모두 추억이 되었다.

버스를 타고 창 밖을 바라보며 mp3로 음악을 듣는 것은 내 아침 저녁의 가장 큰 기쁨이자 낙이었다. 힙합에 심취했다. 너무나 빠져든 나머지 가끔은 버스에서 랩을 하다가 흥얼거림이 입 밖으로 나와버려 승객들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 당시엔 그 철없고 눈치없던 남학생이 몇 년뒤 대학교 축제 무대에서 힙합 공연을 할거라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3년만에 탄 시내버스는 과거 그 자체였다. 코스가 여전했고 배차간격도 비슷했다. 마치 고등학생이 된듯 설레이는 마음 반, 빨리 와주길 바라는 마음 반으로 버스를 기다렸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1분... 2분.. 3분... 3분 동안 스마트폰 시계를 못해도 열번은 봤다. 왜 이렇게 안오나. 자가용이었다면 벌써 시동걸고 출발했을 터인데. 자가용 이었다면 이렇게 춥지도 않을텐데. 자가용 이었다면... 자가용...

편리함에 익숙해져버린 내 모습을 발견하곤 새삼스럽지만 놀랐다. 단지 5분, 길어봐야 10분인 버스 오는 시간조차 견딜 수 없을만큼 조급하게 살았던건가 싶었다. 편함에 익숙해져 작은 기다림도 참을 수 없을만큼 나약해진 것일까. 나는 예전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아니 같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았던 걸까. 내 마음은 여전히 고등학생, 그것도 아니라면 20살 대학신입생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도시화에 찌든 아저씨였다. 솔직히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좀 불편하게 느껴졌다. 자꾸 비교를 하게 되었으니까. 아예 자가용이 없었다면... 이런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면 그 순간 나는 좀 더 행복했을지도. 아아. 그러고보니 행복은 비교대상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이 진리는 일상 어디에서도 볼 수 있구나!

우리들이 어린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매우 축소된 비교대상에 대한 갈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땐 당장의 눈 앞만 보고 산다. 발 밑만 보고 살아간다. 그래서 호탕하게 웃을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먹어갈 수록 멀리 보게된다. 먼 산을 보다가 구름을 보고 달을 보고 태양을 보게된다. '이겨야한다, 빼앗아야한다, 성공해야한다, 꿈을 가져야한다, 모름지기 하고싶은 일이란건 있어야만하고 재능을 개발함과 동시에 단점을 보완해야한다, 누군가를 짓밟고 또 다른 누군가 위에 군림해야한다,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면서 계속 비교하고 또 그들과 경쟁해서 승리해야한다' 등등.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 얘기한다면 미친놈 취급받기 딱 좋은 세상이다.

지금껏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는 너무 변해버린지도. 조금은 천천히 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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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 2015.02.23 11:14 신고

    그러고 보니 저도 시내버스 타본게 언제인지 가물가물 하네요^^

  • 2015.02.23 14:05 신고

    전 틈틈이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는 편이지만
    가끔 다른 분들은 이용하려면 어렵게 생각들을 하시지요~
    간만에 들러 좋은 내용 잘 읽고 갑니다^^

  • 2015.02.24 11:15 신고

    저는 직장이 너무 가까워서...^^

  • 2015.02.27 10:10 신고

    앗...ㅋ 포스팅 하려던 얘기가 여기에...^^ 완전 동감입니다. 이제는 적응이 됐지만 버스가 한시간에 두대 다니는 동네라 놓치면 걍 집에 돌아와 멍때리다 다시 나가고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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